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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풍선의 이야기

1막과 2막 사이

by seetop 2018. 1. 29.

막간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 바쁘게 진행되는데 잠시 시간이 생겨서 다른 일을 하게 될 때, 우리는

"막간을 이용하여 ~~~"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막간은 연극에서의 1막을 마치고 2막이 시작되기 전에 무대 위에 장막을 드리우고 2막을 위한 무대장치와 소품을 재배치 하는 시간을 말한다.

그래서 막간(幕間)이라고 한다.

  

지금이 내게는 막간인 것 같다.

  

나의 1막은 마치 유목민 같다.

도시와 도시를 옮겨 다니는 삶이었다.

  

1막 1장은 유년기라고 할 수도 있다.

고향 문경에서 걱정하나 없이 산천을 뛰어 다녔다.

여름이면 개울에서 멱을 감고 골뱅이 줍고,

겨울에는 연못에서 얼음타고 앞산에서 눈썰매타고...

동네 형들과 함께 몇 개의 산을 넘어 칡 캐러다니고,

  

그러다가 10살 때, 그 당시의 사회가 그러했듯이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따라 대구로 나왔다.

거기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성장기를 보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1막 2장은 경쟁과 성장의 시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울산에서 잡았다.

거기서 14년을 보냈다. 거기서 첫 차를 사고,

아내를 만나서 결혼하고, 두아이를 가졌고,

첫 승진의 기쁨과 두번째 승진의 누락을 경험하고,

IMF를 거치면서 전세금을 떼이기도 하고,

경매로 집을 사는 경험도 하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앉은 자리에서

회사 이름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1막 3장은 혼란의 격동시기였다.

  

그리고, 또다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회사는 인수합병을 거쳐서 직장을 창원으로 옮기게 된다.

1막 4장을 그렇게 시작하게 된다.

울산에서의 직장 생활은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는 상황이었다면,

창원에서의 직장 생활은 다소 다른 면이 있다.

명예퇴직을 빙자한 해고가 매년 되풀이 되고,

매년 본부장과 부서장이 바뀌는,

어쩌면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회사를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노년을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던 차에 나도 어느듯 권고사직의 대상이 되는 나이에 접어들고,

그 순간을 맞이 하였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친구는 새로운 2막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한 달째 쉬고 있다.

아직 2막 1장을 시작한 건 아니기에 지금은 막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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