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삐딱이/삐딱이의 시선(사회)

회의는 내용과 형식에 따라 참석자를 정해야 한다

by seetop 2020. 3. 27.

  회사에서 직급이 높아지면 그만큼 노하우가 많아진다고 생각하는지 많은 회의에 불려다니고, 때로는 회의를 소집하기도 한다. 회의를 소집할 때에는 『회의소집 통보서』라는 걸 작성하고 결재를 받아서 공지한다. 그리고 그것을 작성하기 전에 회의 참석자와 시간과 장소를 사전에 조율하는 절차를 거친다. 회의소집통보서를 결재하는 과정에서 윗분들에 의해서 주제가 심화되기도 하고, 참석범위를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소 상이하게 전개 되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일을 배웠다.

  오늘도 어떤 회의가 있었는데, 그 회의의 문제점은 적어보고자 한다.

  오늘 회의의 주제는 신제품 개발을 위한 조립일정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러면 당연히 실무자 또는 실무 팀장 중심으로 회의를 진행하면 된다. 즉, 주제은 일정 점검, 참석자는 실무팀장급이다. 회의계획은 메일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거기에는 분명히 참석대상자와 주제가 명시되어 있었으며, 참석자 이외의 수신자는 참조자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부사장이 시간과 장소를 변경한다고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부사장은 참석 대상이 아니었다. 몇 번의 시간 변경(부사장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을 한 후에 오늘 회의가 진행되었다. 부사장은 의장석에 앉고서 참석자를 둘러본 다음에 이런 말을 했다. "L전무는 시간이 다 되었는데 왜 아직 안오는 거야?" 내가 대답했다. "메일은 L전무도 수신자에 있어서 받았겠지만, 본문에 들어있는 참석자에 포함이 되지 않아서 참석안한겁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B이사가 "조립장에 문제가 있어서 그거 보러 현장에 내려갔습니다."라고 했다.

  웃기는 일은, 참석 대상자가 아닌 사람이 참석해서 참석 대상자가 아닌 사람이 참석하지 않은 거를 탓하고 있다는 거다. 참으로 웃기는 일이지 않은가?

  더 웃기는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

  회의를 소집한 C 부장은 개발하는 제품에 대한 간단한 개요를 설명하고는 일정을 점검하려고 했다. 그래서 개요를 설명하는데, 부사장이 이런저런 코치를 한다. 이렇게 설계하고, 저렇게 설계하고, 이거 반영하고, 저거 반영하고..... 내일모레부터 조립을 착수해야 하고, 부품은 다 만들어서 지금 입고되고 있는 상황인데, 설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이야기는 DR(DESIGN REVIEW) 회의라고 해서 설계 컨셉을 정의하고 검토하는 회의가 따로 있고, 이미 설계 주관으로 상당부분이 반영되었던 터였다.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 나니 어느듯 점심 식사시간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회의의 주요 내용이었던 일정 점검은 하지 못하고, 다른 이야기만 하다가 회의가 끝났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 내용을 모른채 좌장/의장 자리에 앉으면 일어나는 일들이다. 직급이 높은 사람들 중 어떤이는 자신의 권위만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

  회의는 무조건 짧은 게 좋다. 그래서 한 때 IT 업계에서는 스탠딩 회의(의자에 앉이 않고 서서 대화하는 회의)가 유행했다고 하지 않는가. 여기에서는 경영층에 계신 분들도 자주 회의 시간을 짧게 가져가자고 말하고, 지시를 한다. 그런데 정작 회의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요소는 윗사람들이다. 모르는 게 있으면 담당자를 따로 불러서 물어보면 되고, 토론이 필요한 경우에는 필요한 사람만 모아서 토론을 하면 되는데, 꼭 전체 회의에서 주제에도 없는 안건을 말하면서 토론을 유도한다.

  그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어떠할까? 내가 봤을 때, 그들은 소위 "내가 낸데"하는 심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타인을 배려하고,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행동이 달라질 것이다. 1인 회사에서 출발하여 수백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장이 되기까지 많은 고생이 있었을 것이고, 자부심도 대단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분들 중에는 가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너희들을 먹여살리고 있다. 내가 너희들에게 월급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 아래사람들의 의견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결정할 권한은 자기에게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랫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지도 않는다.

  우리 회사는 회장님만 그러고 있는 게 아니라 부회장, 부사장 등 나이 많은 (나하고 비교하면 그리 많지도 않지만) 사람들까지 그러고 있다. 딱 거기까지만이다. 회사가 조직을 바꾸지 않으면 딱 거기까지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해본다.

'삐딱이 > 삐딱이의 시선(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품 원가와 판매가  (0) 2020.06.05
회의 시간을 지키자  (0) 2020.06.02
중소기업 적합 업종  (0) 2013.02.22
고속도로에서...  (0) 2010.07.10
득과 실  (0) 2007.04.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