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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로/낙동정맥

낙동정맥 제 3차구간 (석개재→삼거리(2004.10.09))

by seetop 2007. 6. 23.

낙동정맥 제 3차구간 (석개재묘봉삿잣재삼거리(임도삼거리 前))

 

산행일자 : 2004.10.09(토)

    : 비 갠 후 맑음

산행거리 : 17km(정맥구간 8km)

산행시간 : 8시간(정맥구간 순보행 시간 : 4시간57)

산 행 자 : 용기(기록), 김현우

구간별 거리 및 소요시간

      2.7km                                         4.8km              0.5km/32.8km

석개재묘봉북동봉용인등봉 ⇒ 997.7 ⇒ 삿갓재삿갓봉 ⇒ 1098삼거리

 ----      A            A         A      A  ----             임도 진행              -----

군도                                          임도 

 

2004.10.08()

21:40

현우는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다. 부산에서 울산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닐진대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수영을 마치고 나와서 핸드폰을 꺼내보니 현우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 있다. 울산에 9시 반쯤 도착 할 것이라 해서 수영을 하고 나오니 현우는 9 전에 울산에 도착했다고 한다. 집에 들러 서둘러 짐을 챙겨서 현우와 만나기로 한 메가마트로 향한다. 농구장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현우를 만나서 배낭과 짐을 현우차에 옮겨 싣고 매장안으로 들어간다. 현우는 급하게 오느라고 저녁을 먹지 못했다고 한다. 저녁을 먹고 수영까지 하고 온 난 그에게 미안해진다. 매장안의 식당은 저녁 9면 영업을 끝내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한군데를 빼고는 먹을 것이 없다. 그곳은 다름아닌 회전초밥 코너. 회전초밥코너의 가격표를 유심히 보던 현우는 비싸다며 다른 것을 먹자고 한다. 고민 된다. 울산까지 왔는데 굶길 수도 없고 이 시간에 어디 가서 저녁을 해결한단 말인가? 그런데……, 회전초밥 옆에 초밥 도시락을 땡처리하는 중이다. 정상가의 50%. 횡재다. 회전초밥을 먹는 것보다 같은 가격에 2~3배 많은 양을 먹을 수 있다.

 

22:15

서둘러 도시락 초밥을 먹고 나서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사서 메가마트를 출발한다. 막 출발 하려하는데 빗방울이 뜯는다. 불길하다. 우리는 국도로 가기로 한다. 울산에서 현동까지 국도로 가면 200km가 조금 넘는다. 목표시간 3시간 40. 원래는 영천까지는 국도를 이용하지 않고 고속도로를 이용하려 했다. 그러나, 점심식사로 김밥을 먹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김밥을 사기 위해서 국도를 선택한 것이다. 이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우리는 나중에 알게 된다. 빗방울이 더 세어진다.

 

10:30

시내에서 경주방향으로 가면 호계가 나온다. 호계도 울산광역시다. 호계 안으로 들어가 김밥집을 발견하여 주문을 한다. 현우는 아까 먹은 초밥으로는 양이 부족했던지 기다리면서 우동을 한 그릇 더 뚝딱 해치운다. 김밥은 2끼니 분을 준비한다.

이제부터 지루한 국도 여행이 시작 된다. 비는 왔다 갔다 한다. 익숙한 울산-경주간 7번 국도는 차들이 제법 많다. 자동차 부품 공단이 있어서 그런지 화물차도 많다. 경주에 들어서는 7번 국도의 왼편은 경주 남산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랑교육원이 있고, 통일전이 있으며, 숱한 부처 석상이 즐비한, 노천 박물관이라 불리는 남산이 있다. 오른쪽에는 낮은 산 사이로 고분이 있다는 표시가 군데 군데 있다. 경주를 지나는 7번 국도는 봄에 벚꽃이 피는 계절에 오면 멎진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드디어 박물관을 지나 첨성대로 유명한 탑정동을 지나 경주 시내로 들어선다. 부인과로 유명한 대추밭백한약당 앞 삼거리에서 죄회전하여 4번 국도로 갈아 탄다. 황남빵 가게를 지나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을 지나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면 왼쪽으로 구부러진 길과 직진 하는 길이 있는데, 이 두 길은 나중에 만난다. 우리는 직진한다. 고개를 넘어서 나타나는 동네는 경주가 아닌 것 같다. 대학교가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다른 도시 같아 보인다. 모텔이 즐비하고, 경주의 트레이드 마크인 기와지붕도 없다. 별천지 같아 보인다.

다시 구길과 만나는데, 영천까지 쉬지 않고 계속 간다. 이 길은 일부만 4차선으로 확장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전 구간이 4차선으로 확장되어있을 줄 알고 국도를 택했는데, 여기서부터 시간적 오류가 만만치 않다.

건천, 북안, 만불상을 지나 만나게 도착한 영천 입구는 다시 4차선으로 확장 되어 있어 잠시 속도를 낼 수 있다. 다시 구길로 내려와 영천 시내로 들어선다.

영천에서는 다시 35번 국도로 갈아타야 한다. 영천 시내는 아직 좁은 길이 많아서 길찾기에 주의를 요하는 구간이다. 6거리에서 신호를 대기하며 35번 국도를 찾아 직진한다. 영천을 조금 벗어나니 주왕산 국립공원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처음에는 여기서부터 주왕산인가 했지만 나중에 그게 주왕산 국립공원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시임을 안다. 길은 잠깐 잠깐씩 4차선으로 확장되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구간이 2차선이고, 굴곡도 많아 빗길 운전에 주의를 요한다. 여기서 만난 치키더키 상표를 단 탑차는 영양까지 우리 앞에서 양보도 없이 계속 같이 간다.

현우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어느새 35번 국도와 31번 국도를 연결하는 68번 지방도에 접어 든다. 68번 지방도를 건너 다시 31번 국도를 갈아타니 청송을 알리는 표지판과 함께 주왕산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자주 보인다.

주왕산을 뒤로하고 영양을 뒤로하고 춘양을 향해서 계속 전진한다. 북으로 올라 갈수록 길의 굴곡은 심해지고, 비는 더 세게 내린다. 시간은 깊어가고, 다니는 차들은 거의 없다.

녹동에서 차는 거침없이 현동 방향으로 핸들을 꺾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금방 아주 높은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동으로 가는 길은 차들이 다니지 않은지 한참이나 오래 된 것처럼 보였다. 비는 그쳐 도로는 말라있으나 낙엽이 길 한쪽으로 수북이 쌓여있고, 산에서 내려온 토사와 자갈이 중간 중간에 쌓여 있다. 그리고 여기가 노루재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보았다.

노루재.

노루재에 관한 추억이 있다. 1992년 겨울. 동해에서 선주의 결혼식이 있었다. 우리는 대구에서 상신이가 빌린 승합차에 상철, 연우, 상신, 그리고 결혼한지 이제 2주 밖에 되지 않았던 현우 내외 이렇게 타고 선주의 결혼식에 갔었다. 그 외에 다른 친구가 있었는지는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그 때는 모두가 사회 초년 시절이라 차도 없었고,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은 상신이와 상철 두 사람밖에 없었다. 갈 때 운전했던 상신이가 결혼식 피로연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누워버리는 바람에 초보운전의 상철이가 차를 몰게 되었는데, 그날도 비가 억수같이 왔고, 당시 예천에 있는 현우의 처가에 현우 부부를 내려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깊은 밤에 초보 운전 상철은 울진에서 봉화로 가파른 고갯길을 아슬아슬하게 넘어와야 했다. 그 때 진땀을 빼며 넘던 고개가 노루재였다. 그 때의 추억이 새롭다. 그 땐 정말 힘들었는데…….

 

02:59

고개를 한참이나 넘어 도착한 현동에는 주유소만이 불을 밝히고 있다. 주유소를 조금 지나 버스정류장이 있고, 택시 사무실은 정류장과 붙어 있다. 새벽 세시의 현동은 적막만 감돈다. 당초에 계산한 시간보다 한시간 20분이나 늦은 4시간 반이 걸려 현동에 도착 했다. 국도가 모두 4차선일 것이라는 오해로 인하여 대략 한시간 정도 더 걸렸고, 노루재를 넘지 않고 노루재터널을 이용했다면 한 20분을 더 시간을 줄였을 것이다. 와 노루재를 넘으면서 한 20분 정도를 더 소요했다. 현우와 나는 일단 1시간이라도 자기로 한다.

 

04:00

깜빡 했는가 싶은데 어느새 4 되었다. 차에서 내려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소천택시(김진학:011-501-7676(054-672-7676)소천개인택시) 맞은편에 있던 다른택시(011-818-2866(054-673-2866, 현동택시)) 가 어디론가 떠난다. 현동에는 두 대의 택시가 있다. 마음이 급했던지 현우는 현동 택시가 다른 사람을 태우러 떠나면 안된다며 전화를 한다. 사무실에 불이 들어오고, 배낭을 점검하는 사이 기사가 나온다.

 

04:20

경북 북부지방 특유의 사투리를 구사하는 현동 택시 기사는 이런 저런 이야기로 우리의 피곤함을 풀어준다. 차에 대한 이야기부터 아마무선 햄에 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화제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길은 계속해서 꼬불꼬불하게 이어진다. 어느산인지 모르는 산 중턱을 지나는데 동물 한 마리가 뒤뚱뒤뚱 뛰어간다. 너구리라고 한다. 사람이 뛰어가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느리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지난번에 본 듯한 길 들을 지나는가 싶더니 멀리 자동차 불빛 속에 곰 두 마리가 길 가에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05:00

삼척과 봉화의 경계에 있는 석개재에는 곰 두 마리가 길 양 옆으로 떡 하니 버티고 서있다. 묘봉 방향으로 이어진 임도에는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다.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기간에는 입산하지 말아달라는 안내문과 함께……. 재에는 바람이 거세다. 춥다.

 

05:20

비교적 바람이 덜 부는 곳을 찾아 버너를 꺼내 아침을 준비한다. 햇반과 레또르. 오늘의 메뉴는 된장찌개다. 추워서 그런지 시간이 참 더디게 간다. 햇반 대용량은 끓는 물에 18분을 데워야 한다. 레또르 된장찌개는 3분이면 된다. 급한 마음에 한 1~2분 덜 익혔다고 해서 뭐 달라질까 했더니 밥이 덜 익었다. 그래도 그런대로 먹을 만 하다. 된장찌개에 밥을 비벼먹고 나서 다시 배낭을 싼다. 다시 빗방울이 떨어진다. 사방은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겨우 헤드랜턴만이 우리의 지표가 되어주고 있다. 비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기를 반복하다가 입고 출발 하기로 한다. 하늘이 조금씩 밝아온다.

 

06:08

출발지점에 리본을 하나 매어달고서 올라선다. 우리가 대체적으로 남으로 향하고 있으니 왼편은 동쪽이 된다. 동쪽은 급경사다. 매봉산에서 통리를 거쳐 면산을 지나 석개재까지 오는 구간이 계속해서 그랬다. 왼편 즉, 동쪽은 낭떠러지이고, 오른편 서쪽은 상대적으로 완만하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왼편은 경사가 너무 급하다. 야간 산행에는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동이 트고 있다. 랜턴을 꺼도 시야가 확보된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 한다. 산죽이 머금은 빗물이 벌써 바짓단을 흠뻑 적시고 있다. 그리 큰 경사는 없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우거진 숲을 지난다. 산죽이 많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산죽군락을 헤쳐 나가니 경사가 가팔라 온다. 묘봉 북동봉인줄 알고 도착한 봉우리는 구조위치표지판이 있다. 『조난자 위치 추척 표지판/가곡-1 묘봉앞』. 묘봉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높다. 그래도 지난번에는 이보다 더한 경사도 지나오지 않았던가?

공터를 지나 5분 정도 가니 묘봉 삼거리가 나온다.

 

07:30

묘봉 삼거리에는 매직펜으로 써서 비닐로 코팅한 종이가 노끈에 매달려 있다. 묘봉 왕복 25. 석개재 두시간, 삿갓재 3시간이라도 적혀있다. 비가 많이 와서 묘봉을 답사하는 것은 포기하고 서둘러 정맥을 따른다. 내리막에서 왼쪽 발목과 무릎이 좋지 않다. 현우가 보기에 내가 심하게 저는 것으로 보인 모양이다. 사실 내리막에서 한걸음씩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큰거려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우가 되돌아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한다. 지도를 보며 삿갓재까지 세시간이니 임도삼거리까지는 12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며 가는 데까지 가보자고 한다. 삿갓재까지 가서 더갈껀지 그만 할건지 결정하자고 했다. 도저히 힘들면 불선골로 내려오자면서…….

 

09:00

그다지 급하지 않은 경사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도착한 봉우리는 엉망이다. 누군가가 최근에 전기톱으로 아름드리 나무를 베어버렸다. 첨에는 버섯을 재배하기 위해 좋은 참나무를 구할 요량으로 그랬나 보다 하고 생각 했는데, 봉우리 정상에는 그 생각이 바뀐다. 건교부에서 설치한 삼각점이 증거라도 되듯이 설치년도가 2004년으로 되어있다. 아마도 삼각점을 설치하기 위하여 시야를 가로막는 나무를 베었으리라. 필요악이라고 했던가. 삼각점은 여러모로 유용한 시설이지만, 설치하기 위해서 수십년 자란 나무를 베어버리다니……. 지도를 보니 여기가 977봉이다.

간식으로 연양갱을 먹고 좀 쉬다가 다시 출발한다. 비는 계속해서 오락가락 한다. 바람이 매우 거세게 불어온다.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다. 묘봉 삼거리에서 확인한 시간대로라면 삿갓재까지는 앞으로 한시간 반을 더 가야 한다.

 

10:10

드디어 임도를 타고 있는 삿갓재에 도착 한다. 리본을 하나 매어두고, 우리는 계속 진행할 건지 하산 할건지를 결정한다. 추위와, 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절뚝거리는 내 다리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접고 하산하기로 결정한다.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걸어 내려간다. 왼쪽은 삼척 방향이다. 임도는 고운 흙으로 만들어져 있다. 걷기에는 부담이 없다. 그래도 내리막에서는 다리가 욱신거린다. 지난 9월 중순 이후에 운동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임도변에는 단풍나무가 예쁘게 물들었다. 사진을 한 장 찍고 다시 걷는다. 임도에는 각종 리본들이 가끔씩 걸려있다. 이구간은 낙동정맥 중에서도 꽤 긴 구간에 해당하기 때문에 마루금을 버리고 임도를 따르는 정맥종주자들이 많이 있다고 하더니 임도 양 옆으로 군데군데 매달려있는 리본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11:05

대략 한 시간 정도 걸으니 차단기가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직진해서 가면 불선골을 통해서 반야로 빠지는 길이되고,왼편의 임도를 따르면 소광,석포,전곡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는 임도 삼거리가 나온다. 우리는 하산하기로 결정하였으므로 석포면 반야리 방향으로 내려간다.

임도는 계곡을 따라서 굽이굽이 쳐 내려간다. 하늘은 개어 푸르디푸른 빛을 쏟아내고 있다. 안개가 걷인 산등성이에는 잡목더미가 쓸려 내려온 흔적이 역력하다. 몇 년 전에 큰 불이 나서 타다 남은 나무들을 베어내고 새로이 나무를 심은듯 키 작은 나무들이 언덕을 오르고 있다. 빈자리에는 어김없이 산죽이 터를 잡고 있고, 베어낸 시커먼 나무들은 골을 따라 아래에 몰려있다. 반대편 골에는 단풍나무가 이미 빨갛게 타오르고 있고, 다른 나무들은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다. 지도상으로 대충 계산한 골짜기는 『마지막 인가』라고 표시된 곳까지 대략 8km가 넘을 듯하다.

계곡은 아름답고 수려하다. 무릉도원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계곡에 있으면 나 또한 신선이 아니런가. 난 계곡이 되고, 산이 되고, 물이 되고, 바람이 되고, 나무가 될 것 같다. 새파란 하늘 사이로 구름은 빠르게 비켜서고 있다.

날이 갤 줄 알았다면 욕심을 내어볼걸 그랬나? 돌아와 생각하니 무리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정보다 1시간 늦게 출발하였고, 산행시간도 삿갓재까지 30분 이상 지체된 상황에서 절름거리는 다리를 가지고 나머지 8시간정도의 산행은 무리였을 것이다.

마을까지의 임도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는 너무도 맑고 경쾌하며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은 신선한 공기란 이런 것이다 하며 뽐내는 것 같다.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산은 비록 작년과 재작년의 태풍피해로 짐작되는 사태의 흔적은 있지만, 높이별로 색깔을 달리하여 만추를 재촉하고 있다.

한 한시간 쯤 내려와서 임도 한복판에서 배낭을 벗어내려 싸온 김밥을 먹는다. 소풍이 따로 없다. 낙엽이 떠내려가는 계곡의 물소리는 아직도 귓전에 선하다. 임도 옆으로 서 있는 소나무는 한번도 휘어짐이 없이 하늘로 치 솟아 올라 있다. 황금송이라고 하던가? 소나무껍질이 붉은 색이다. 옛날 궁궐에는 이런 나무를 가져 가서 건축자재로 썼다고 한다.

 

12:58

김밥을 먹고서 대략 1시간 정도를 더 내려와서 지도상에 있는 『마지막 인가』를 만난다. 피곤한 탓인지 처음의 상쾌함은 온데 간데 없고 걷는 것조차 힘들기만 하다. 그곳은 두개의 시내가 만나는 곳이라 자갈이 많고, 강폭이 제법 넓다. 묘봉이 오른편으로 치올려 보인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더니 그 말을 실감한다.

흰색 십자가는 『법화도량』을 알리는 글이 씌어 있다. 인가는 폐가인지, 사람이 사는 곳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허물어진 채로 듬성 듬성 밭 사이로 보인다. 여기까지 오면 택시를 부르려고 했다. 그런데, 골이 깊어서 그런지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다. 좀 더 내려가면 핸드폰이 연결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몇 걸음 더 가서 숲 사이로 보이는 법화도량은 온통 흰색이다. 십자가와 卍자가 같이 있는 걸로 보아서 불교는 아닌 것 같다. 밭길 사이로 『송이 분수지역, 허락 없이 입산을 금함』을 알리는 표지가 자주 보인다. 여기 송이가 많이 나는 지역인가보다. 자연산 송이가 비싸다고 하던데……. 현우는 산행오기 전에 버섯에 대해서 조사를 좀 했다고 한다. 산행하다가 버섯을 보면 채취하려 했다나 어쨌다나…….

한참을 걸어서 겨우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밭일 하는 아주머니께 여기 동네 이름이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반야』라고 한다. 석포까지 갈려면 얼마나 더 가야 되느냐고 물으니 한시간이면 된다고 한다. 한시간을 더 갈 힘이 없다. 택시가 들어오느냐고 물으니 들어 온다고 한다. 희망을 가지고 핸드폰을 꺼냈지만, 역시 불통 구간. 전화를 빌려쓰기 위하여 길가에 있는 집에 들어가 주인을 찾으니 모두 밭에 나갔는지 기척이 없다. 도대체 어디까지 걸어야 할지 가늠되지 않는다.

지도를 펼쳐 보니 석포초교반야분교가 보인다. 비록 오후긴 하지만 학교에 가면 전화를 빌릴 수 있지 않을까? 일단 학교까지라도 가보자 하며 다시 걷는다. 산길 보다는 평지가 걷기는 더 힘들다. 왜냐하면 지루하기 때문이다. 산길은 오르락 내리락 하고, 나무와 풀들을 구경하며 걸을 수 있다. 여기 이 길은 왼편에는 냇가, 그리고 산자락에 붙어 있는 작은 밭뙈기가 볼거리 전부다. 게다가 포장된 길은 자갈길보다야 걷기 쉽겠지만, 흙길 보다는 몇 배 힘들다.

 

14:00

길 옆으로 공터가 있고, 큰 돌무지가 있는 곳에서 배낭을 내리고 잠시 쉰다. 배낭이 어느 정도 말랐기에 배낭덮개를 말아서 넣고, 비옷도 말아서 배낭 안으로 집어 넣으며 연양갱을 하나씩 먹는다. 요즘 연양갱이 히트상품이라고 한다. 마라톤, 인라인, 등산이다 하면서 소위 아웃도어 라이프(Out-Door Life)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먹기 간편하고 영양가가 풍부한 연양갱류가 인기 상품으로 되었다고 한다.

짐을 다시 정리하며 쉬고 있는데 멀리 봉고차가 1대 나온다. 급하게 손을 들어 태워 줄 수 있겠느냐고 하니 타도 좋다고 한다. 우리더러 어디까지 가느냐고 하길래, 지리를 잘 모른다면서 기사분에게 어디까지 가느냐고 되 묻는다. 그는 춘양으로 간다고 한다. 그래서 현동을 지나갑니까 하니 지나간다며 현동까지 태워주겠다고 한다.

우리를 태운 차는 거침 없이 산길을 내어 달린다. 조금 가니 계곡이 나오고 벼랑 끝으로 차는 오르락 내리락 한다. 이 차를 만나지 못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참으로 운이 좋다 등등 생각을 하는 사이 깜빡 졸았나 보다. 비록 어둠 속이었지만 두 번 지나온 석포는 익숙하게 느껴진다. 석포천을 끼고 도는 31번 국도에 들어서는가 했는데, 졸고 있는 사이에 저기 주유소 뒤로 가면 버스 정류장이라요.”라고 말하는 소리에 깨어보니 현동이다.  

현동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하게 알 지 못한다. 난 잠이 덜 깬 상태로 차를 바꾸어 타기에 바쁜데, 현우는 곧장 차를 몰고 길을 나선다. 어제 밤에 온 길을 지나쳐 노루재터널로 들어선다. 터널은 꽤 길다. 그래도 터널을 빠져 나오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5분도 걸리지 않은 듯 하다.

가만, 청송 가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현우는 그냥 지나쳐버린다. 잠시 후 우리는 휴게소에 도착한다. 

봉화휴게소에서 다시 배낭을 꺼내 버릴 것을 구분하여 짐을 다시 챙긴다. 화장실에도 다녀오고, 신발도 갈아 신고, 자판기 커피도 한잔 마시고, 사과도 한 개 깎아 먹는다. 아내에게서 전화가 온다. 등산은 잘하고 있냐고. 그래서 산행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쉬고 있다고 대답한다. 울산까지 한 4시간 넘게 걸리니 쉬엄쉬엄 가게 되면 8 전에는 도착하기 어려울 거라고 이야기 한다. 

 

16:30

봉화휴게소에서 우리는 영주까지 가서 고속도로를 타기로 한다. 내가 운전을 하겠다는데 현우는 한사코 자기가 하겠단다. 피곤한건 마찬가지일 터이고, 올 때 자기가 했으면 갈 때는 내가 해야 도리인데 양보를 하지 않으니 미안하기만 하다. 휴게소를 나와 한참을 가서 봉화 시내로 들어온다. 봉화 시내가 가까워질수록 송이버섯을 파는 가게가 많이 나온다. 자연산 송이가 어떤건지 구경하기로 하여 주차하기 쉬운 가게 한곳을 골라 들어선다. 가게를 지키는 아가씨의 말은 지금 벌써 철이 지나서 2등품은 보관하고 있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3등품과 등외품을 보여 주며, 3등품은 1키로에 12만원, 등외품은 1키로에 9만원 한단다. 3등품부터는 벌써 송이 특유의 삿갓이 많이 피어버렸다. 송이를 보며 삿갓재 근처에 송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거라는 추측해본다. 우리가 살 마음이 없는 것을 알았는지 아가씨는 귀한걸 보여주겠다며 다른 상자를 연다. 거기에는 초등학생 팔뚝만한 송이가 1개 있다. 누가 봐도 상품임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좋아보인다. 1 9만원 이란다. 한 사람이 먹으면 배부를 정도가 되고, 둘이 먹으면 송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며 먹을 수 있단다. 송이 한상자에 30만원 한다는 소리가 틀린 말이 아니다. 금방 본 이런 것 3개만 있으면 30만원이 되니까. 그냥 구경한번 잘했다고 말하고는 가게를 나온다. 욕심은 나지만, 우리가 먹기에는 너무 사치스럽다. 송이는 9월초에서 10월초까지가 철이라고 한다. 내년에는 용돈을 좀 모아볼까?

차는 봉화를 빠져 나와 영주를 관통하여 고속도로에 오른다.

그리고 잠깐 졸았는가 했더니 벌써 한밤중이다. 동명휴게소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으나, 우동과 돈까스류 밖에 없다. 추석으로 인해 조기 개장 해서 별로 먹을 게 없다.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 하나씩 사서 마시고는 내가 운전대를 잡는다. 익숙한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울산으로 향한다.

 

20:12

울산 톨게이트에 들어선다. 현우는 깊은 잠에서 잠깐 눈을 뜬다. 울산에 들어왔음을 확인하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20:45

터미널 근처에 있는 『터미널 해장국』에서 소피국을 먹으며 서울역 앞에서 같은 돈을 주고 먹었던 돼지피국과 차이를 이야기 한다. 소피와 돼지피는 익혀놓으면 확실한 차이가 난다. 맛도 그러려니와 국물의 색깔도 다르다. 이런 저런 산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뚝딱 해치운다.

다음 번 산행은 석포에서 반야 안쪽의 법화도량까지 택시를 타고 들어가서 산행을 시작 하기로 한다. 새벽에는 차가 안들어가려고 할 테니까 대략 7시 30이나 8시경부터 산행을 하자고 결정한다.

나중에 석포택시(이학형:011-538-6272)에 전화를 하니 해 있을 때만 반야에 들어간다고 한다. 다음 산행을 할 때도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금회 총 산행시간 = 12:07(식사+휴식 포함시 14:40)

정맥구간 = 4:57

금회 총 산행 거리 = 8km

정맥구간거리 = 8km/32.8km/410.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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