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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풍선의 이야기

고향이란?

by seetop 2008. 2. 9.

고향이란...

태어나서 자란 곳을 고향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나이의 세대 중에는 고향이 없는 사람들이 많겠다는 생각을 해본다(순전히 나의 경우에만 해당 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산업화 시대를 살아오신 분이다. 산업화의 물결을 따라 고향을 떠나 이사를 몇번에 걸쳐 하시는 동안 당신의 자식들은 고향이 없어진(?) 경우를 나를 통해서 살펴보자.

 

아버지는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나셨다.

김제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셨으니 아버지의 고향은 당연히 전북 김제가 된다.

그리고 일제가 끝나고, 돈을 벌기위해 직업군인의 길을 택하셨고, 625가 발발한다. 전쟁중에 전국을 오가며 생활을 하시다가 전쟁이 끝나고서 강원도 홍천에서 잠깐동안 생활 하셨다. 그러나 전쟁 때 입은 부상으로 직업군인의 길을 버리고 전역하셔 직업을 찾아서 당시 인기가 있었던 광산으로 옮기셨다. 그곳은 강원도 영월이었고, 아마도 거기서 어머니를 만나신 것 같다. 어머니는 고향이 제천이다. 신접살림은 제천에 차리고, 누나와 형, 그리고 나를 낳은 후에 좀 더 좋은 벌이를 찾아서 다시 점촌으로 이사를 하셨다. 점촌은 당시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였고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모든 차량이 문경새재를 넘기위해서 쉬었다 가는 곳으로 꽤 북적거렸다고 한다. 물론 경부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이었다. 게다가 점촌에서는 문경의 탄광이 지척에 있어서 일자리가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누나는 서울로 돈벌러 떠났다. 오래된 가요에 나오는 "순이"처럼...

 

나의 기억은 여기서부터 존재한다. 누나는 1년에 한두번 서울에서 내려왔다. 내가 살던 동네는 또 다른 가요에 등장하는 "물레방아"도 있었고,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고향역"도 있었다.  형이 중학교 가는 무렵에 아버지는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 대구로 나오게 된다. 난 그 때 11살이었다. 그리고 한참동안이나 난 그곳 점촌을 고향이라고 생각 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다 보냈지만, 지금 대구에는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없다. 대구에서도 멀리는 아니지만, 전세값 때문에 평균 2년에 한번꼴로 이사를 다녀서인지 "동네  친구"를 제대로 사귈 시간이 모자랐다. 어쨌든 대학까지 대구에서 나온 후 나는 취직을 해서 울산으로 혼자 떠난다.

 

그리고 울산에서 14년 동안 다닌 직장은 IMF로 시작된 그룹사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분해되다시피하고, 사업부의 매각으로 나는 다시 창원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지금 부모님은 대구에 계신다. 30년 정도 대구에 살고계시기 때문에 어쩌면 아버지의 고향은 가장 오래 살고 계시는 대구가 맞는지 모른다. 이제 아버지의 고향 김제에는 아버지의 동기들이 계시지 않는다. 다만 그분들의 산소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는 결국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시고 대구에 머무르고 계시는 것이다.

 

나는 명절마다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가 참 많이 망설여진다.

"고향이 어디에요?"

이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진짜 고향이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다. 명절 때 귀성하러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것이다. 난 상대방의 질문의 의도를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고향은 문경 점촌이지만, 그곳에는 친척도 친구도 아무도 없다. 점촌에서 함께 어린시절을 보낸 친구들은 나의 부모님께서 그러하셨듯이 그들의 부모님들께서도 모두 아이들을 데리고 도회지로 나오셨거나 혹은 자식들만이라도 도회지로 보내셨기 때문에 명절에는 친구들 조차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지 않는다.

 

학창시절을 대구에서 보냈지만, 대구에는 친구들은 없고, 부모님만 계신다. 잦은 이사 때문이라기 보다는 숫기가 없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학창시절 친구들을 깊이 사귀지 못했고,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는 대구에 가면 서울에서 내려오시는 형님 식구들과 함께 명절 아침상을 차려먹고(우리는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아버지가 막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차례를 지내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길을 나선다. 형님과 내가 번갈아 가며 운전해서 아버지의 고향인 김제로 가서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들에게 성묘를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회사에서 명절 당번을 정하기 위해서 혹은 비상연락망을 확인하기 위해서 행선지를 질문 받으면 대답이 복잡해진다. "일단 대구로 갔다가, 부모님 모시고 전북 김제로 갑니다. 거기서 성묘를 하고...."

 

요즘은 길도 좋아지고 차도 좋아져서 대구에서 전북 김제까지는 하루만에 다녀올 수 있는 상황이 된다. 10년 전만해도 막히는 고속도로를 피해서 전북 장수에 있는 육십령을 넘어다녔다. 가는데 하루, 오는데 하루 걸리는 길이었다.

 

태어나서 자란곳을 고향이라고 하는데, 난 제천에서 태어나고, 문경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지냈으나 그 모든 곳에는 나를 반겨주는 친구들이 없으니 딱히 고향이 어디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명절에 물어오는 고향은 대개 아버지의 고향을 이야기 한다. 왜냐하면 가장 멀리 가는 곳이니까...그리고, 오래된 친구에 대한 고향은 당연 문경 점촌이고, 학창시절의 추억거리는 대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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