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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풍선의 이야기

조문

by seetop 2008. 4. 12.

4/9(수) 오후 4시

평소 연락이 없던 개똥이 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런 저런 농담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참 주고 받고 있는데, 그가 말한다.

"너 아직 소식 못들었구나!"

"왜? 또 누가 돌아가셨데?"

 

우리 나이 또래가 되면, 위와 같이 "소식 못들었구나"라는 표현은 1)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 2) 누군가가 이혼을 했다는 소식 둘중 한가지일 가능성이 많다. 좋은일에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좋은일로 평소 연락없던 친구가 전화하는 일이 많지 않다.

 

"선주 아버지가 돌아가셨데!"

"언제?"

"아까, 낮에!"

그리고 우리는 습관적으로 문상을 가는 것이 당연한 것 처럼 대화가 이어진다.

"그런 언제갈래?"

"너는 어떡할껀데?"

"글쎄, 오늘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왜냐하면, 거기까지는 암만 못가도 5시간은 잡아야 하잖아."

 

선주의 아버지는 강원도 동해에 계신다. 창원에서 동해까지는 두가지 경로가 있다.

경주를 지나 포항을 거쳐서 7번국도를 타고가는 길과

원주까지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서 동해까지 영동선을 타고 가는 길.
"그렇지."

"그러니까 이따 출발해도 내일 출근전까지 오려면 인사만 하고 일어나야 할텐데, 내일 저녁보다는 오늘 저녁에는 적어도 1시간은 일찍 출발할 수 있지 않겠어?"

 

그로부터 무려 40여통의 전화를 주고 받은 끝에 저녁 8시 반에 출발한다.

창원에서는 거제도 사는 친구와 합류해서 3명이 출발, 경주에서 1명을 태워서 가기로 했고,

부산에서는 3명이 모여서 가기로 했다. 양산에 사는 친구 2명은 일이 있어서 부조만 하기로 하고,

마산에 사는 친구는 다음날 낮에 다녀오기로 한다.

 

비는 하염없이 쏟아지고...장거리를 운전할 때는 어김없이 과속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잠이 오기 때문에...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음이 올것 같으면 무작정 쉬었다 간다.

이제 장거리 운전도 에전같지가 않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모양이다.

 

경주박물관은 7번국도에서 약간 비껴 있다. 박물관 주차장에서 친구를 태우고 본격적인 7번 국도에 오른다. 한참을 가다가 기름을 넣고서 잠깐 쉬는데, 전화가 왔다.

"낸데, 어디라?"

"7번 국도에 올라서 포항으로 가는 중이라."

"좀 기다리. 여기 길을 아는 사람이 없어. 기다�다 같이 가!"

고향 친구들은 우리끼리 모이면 어릴적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한 30여분을 기다리니 그들이 왔다. 그들이 타고 있는 차는 카니발이었다.

"진작에 이야기 하지, 이따가 카니발로 옮겨타고 가자"

한 5분 정도 가니 신호등 근처에 마을금고가 있고 주변에 공터가 보였다. 퍼붓는 빗속에서

차를 주차하고, 갈아타고, 덜덜덜 떨면서 다시 출발한다.

 

카니발 운전수가 바뀌었다.

카니발은 부산에서부터 하마가 운전했는데, 나머지 두명이 승합차 운전을 할 줄 모른다고 개겼는 것 같다.

운전은 빵세가 하기로 했는데, 이친구 카니발 운전이 처음이다. 핸드브레이크(사이드브레이트)도 풀지 않고, 기어도 3단에서 출발한다. 친구들이 말이 많다. 믿을 수가 있느냐, 죽고 싶지 않다, 살려달라....어지간하면 운전대를 양보해라...결국 빵세는 차를 포항으로 몰지 않고, 경주로 되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시 유턴을 해라, 눈은 뒀다가 뭐하느냐, 가기 싫은거냐...이길이 맞다, 틀리다...또 말이 많아진다.

그런 시덜갑지 않은 농담을 죽 받으며, 집값이 올랐느니, 애들이 학교생활을 힘들어 한다느니...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조용해진다....다들 잠속으로 풍덩!

 

망향휴게소에서 잠시 차가 멈춘 것 같다.

어느새 다시 하마가 운전대를 잡았다.

도착 예정시간인 새벽 두시에서 삼십분을 넘겨서 도착했다.

 

서울에서 온 세명이 우리가 올때를 기다려서 조문을 미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동해에 온게 1992년, 벌써 16년이 되었다.

 

짧은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아쉬움을 남기고 세시에 출발했다.

없는 고속도로를 올라타자고 해서 30분동안 강릉방향으로 가다가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하염없는 어둠을 헤치고 남으로 남으로 계속 내려왔다.

7번 국도는 중간 중간에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공사가 다 마무리 된되면 고갯길은 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동해로 가는 시간이 적어도 한시간 이상 단축될것이다.

 

올 때는 내가 두시간 정도 운전하고, 하마가 다시 두시간 운전해서 차를 세워둔 경주인지 포항인지 모르는 국도변에 차를 세웠다. 비는 여전히 쏟아붇고 있는 가운데 차를 옮겨타고서 빵세가 운전해서 경주 박물관에 친구를 내려주고, 다시 고속도로를 달린다. 잠깐 졸았는지, 눈을 뜨니 차는 양산 교차로 갓길에 정차해있다. 빵세가 잠이와서 잠깐 쉬고 있다. 북부산에서 운전대를 현우가 바꿔쥐고 장유로 내려왔다.

장유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8시.

 

멀고 긴 여정이었다.

친구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그렇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녀오는데, 왜 그렇게 하는 지 그 이유는 모른다. 그냥, 그렇게 해야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한다. 가끔씩 동참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때는 웬지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온다.

 

선주 아버지는 올해 칠순이란다.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셔서 병원에서 수술받고 퇴원하시는 날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셨단다.

승우 아버지는 일흔여덟. 우리 아버지는 올해 여든...

 

아버지께 전화를 해야지 하면서 벌써 몇주가 지난 것 같다.

오늘은 전화를 해야지. 그래서 당신의 아들이 건강하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당신의 손주들도 잘 크고 있다는 말씀도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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