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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풍선의 이야기

편지쓰기

by seetop 2008. 4. 6.

가끔은 아주 가끔은

누구에겐가 편지를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들기지 않고

모나미 153 볼펜으로 흰색 편지지에 꾹꾹 눌러서 누구에겐가 편지를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같이 화창하고, 벚꽃이 허드러지게 피어있는날

혹은

늦가을에 을씨년스런 바람이 낙엽을 몰고 다니는 날

마음이 허해져서 누구라도 붙잡고 수다를 떨고 싶은날

삶의 무게가 견딜 수 없이 무겁다고 느껴지는 날

그런날에는 어김없이 편지를 쓰고 싶다.

 

나이 마흔이 넘고,

세상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데,

정작 친구들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

중고등학교때에는, 그리고 대학시절까지는 편지를 가끔씩 썼다.

친구들의 주소를 제법 가지고 있었고, 물어서 알 수 있었고,

게다가 당시에는 펜팔이란게 있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과도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기술이 발달한 요즘, 그리고 나이가 들어 어느새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지금,

새로운 것 배우기를 거부하는 것 만큼이다

친구들에게 편지 쓰는게 귀찮아지는 나이가 되어버렸고,

그러면서 어느새 친구들의 주소도 명함도 사라져

핸드폰속의 숫자로만 친구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어버린 요즘

편지를 받아줄 대상이 없어진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더 공허함을 느끼는 것 같다.

가족은 가족으로서의 의미가 있지만,

일주일에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후에나 겨우 온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고,

하루 중 17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다 보면

가족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이미 가족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회사의 동료들은 어던 목적을 위해 만난 사람들이라는 가정을 해보면

역시 속마음을 쉽게 터 놓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고 터 놓고 싶은 속마음을 가족에게는 더욱 더 터 놓지 못하게 되지.

왜냐하면 주말 저녁에나 잠깐 모이는 가족들에게 내가 처한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의 재롱을 보고, 커가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몇년전에

복권을 정기적으로 사는 친구를 경명한 적이 있었다.

인생을 왜 그렇게 사느냐고

지금은 내가 그 친구처럼 매주 복권을 사고 있다.

그리고 복권을 사는 두세시간은 허황된 꿈을 꾸며 행복에 빠진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두세시간동안 술을 마시는 비용에 비하면

복권을 사서 주세시간 행복해지는 건 비싼 사치가 아니다.

지금 그 친구의 입장을 약간 이해하게 된다.

그 때 그 친구의 처지가 지금의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오늘도 회사에 출근해서 이것 저것 살피다가

편지를 쓰고 싶은 생각에 몇자 적어보았다.

옛날 펜팔 같은, 모르는 사람과 전자우편을 주고 받으며 친구가 되는 그런 사이트가 있을까?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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