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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친구/긴 글 짧은 생각

조용한 날들의 기록

by seetop 2023. 12. 27.

2023_24 조용한 날들의 기록 / 부제: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 / 김진영 한겨레출한 / 2023 02 20 / 2023.12.25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멜랑꼴리 해진다. 저자는 노년의 일기를 통해서 일상과 늙음,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마치 노년의 우울에 대하여 끊임없이 서술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려운 책이다. 그는 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강의의 소재가 된 책에 대하여 언급하고, 강의를 함께 들은 제자들에 대한 단상을 적기도 했지만, 주요 내용은 그날 그날의 무던하고도 짧은 생각들이다. 마치 이게 인생의 종착역으로 가는 기차를 탄 사람의 마음일 것이야 라고 말하는 것 같다. 평범하고 매일 똑 같은 일기 예보를 일기에 적었는데, 같은 날씨도 어제 읽었을 때와 오늘 읽었을 때가 다르다. 그날 그날의 기분과 기온, 날씨에 따라 변하는 독자의 심리를 미리 점쳤을까?

담배의 파란색 연기에도 의미를 부여하려는 듯한 그의 글은 오히려 무덤덤하다. 가끔 가슴을 후비는 느낌을 주는 글들이 발견될 때, 내 마음은 보석 같은 문장을 발견해서 기쁜 것인지, 염세적인 동지를 만나서 안타까운 것인지 복잡해진다. 알고 있던 단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만날 때고 그렇고, 몰랐던 지식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렇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껍데기만 남은 육체를 근근이 끌고 다니며 생각을 말하고, 말한 생각으로 육체를 다시 채우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글에서…….

-       사랑하는 사람들이 입을 맞추고 애무를 하는 건 서로의 몸을 만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지고 싶어 하는 건 서로의 영혼이다. 하지만 영혼은 만질 수가 없기 때문에 영혼을 감싸고 있는 육체를 만진다…….

-       문득 책 읽기를 멈추게 만드는 문장 기호가 내게는 있다. 그건 세미콜론이다: [;] 세미콜론은 내게 피아노를 연상케 한다. 끊어지면서 이어지는 피아노의 단호하고 부드러운 타음을 나는 사랑한다.

-       마음이 늘 불편한 건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그건, 아마도, 아니 거의 분명히, 마음껏 사랑하지 못해서, 그럴 수가 없어서인지 모른다…….

-       어떤 병은 환자가 그 병에서 낫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오래 걸린다. 이별의 병이 그렇다. …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주의자고 쾌락주의자다. … 이별의 아픔에서 서둘러 낫지 않으려는 사람은 그 아픔에서, 아니 그 아픔이 서서히 물러가는 그 부드러운……

-       역사란 무엇인가. 그건 내게 흘러간 시간과 기념비적 사건이 아니라 죽은 사람들이다.

-       그녀는 사라진 애인을 생각하면서 일생 동안 그 꽃을 몸에 지니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꽃말이 나를 잊지 마세요가 되었다. (물망초에 대한 다른 해석…)

-       사람들은 모르는 것들에 매혹된다. … 매혹되었다면, 모르는 것들은 더 이상 모르는 것들이 아니다.

-       쾌락은 현자를 닮았다. … 쾌락은 빠르게 변할 줄 안다. 빠르게 나타나서 빠르게 머물다가 빠르게 사라져서 다른 쾌락이 될 줄 안다.

-       자고 나면 온몸이 굳어 있다. 이제는 자는 일이 죽는 연습인 줄 아는 모양이다.

-       거대한 망각이 있다. 오로지 그것만이 잊지 않는다. …. 비평은 망각을 깨우는 일이다.

-       그가 즐거워 하는 건 …. 소란한 식사의 자리였다.

-       노년이 자유로운 건 그것이 아무도 원하지 않는 버려진 시간, 남겨진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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