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9 뉴턴의 아틀리에 / 부제 :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 김상욱, 유지원 / 민음사 / 2020년04월20일 / 2024.03.05
책을 읽다가 문득,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뉴튼과 뉴턴이 헷갈린 것이다. 나는 이제껏 그의 이름을 뉴튼이라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뉴튼이든 뉴턴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싶지만, 우리가 무언가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할 때 그것에 대한 이름을 알고 있거나 부여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오죽하면 시인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을까. 과학에서도 그렇다. 이름이 있고 나서 그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분석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지 회의를 할 때 발표자가 “이것”, “저것”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할 때면 매우 거슬린다.
(국립국어원에서 2012년에 뉴턴으로 적어야 한다고 트위커에 올렸다고 하니, 그 전에는 뉴튼으로 적는 경우도 많았던 듯.)
내 입장에서는 다소 두서 없는 글들의 집합인 것처럼 보인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많이 있었으나, 솔직히 별로 관심이 없던 분야에 대한 글처럼 느껴진다. 예술, 특히 미술 작품을 보면서 그 속에 숨어있는 과학적 사실을 읽어내는 일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젊었을 때처럼 그리 감흥이랄 게 없다. 내가 늙은 건지, 새로운 게 없거나 아직도 모르는 게 많은 탓에 흥미를 잃은 건지 모르겠다. 마치 의도적으로 (좋지 않게 말하자면 억지로) 끼워 맞춘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폰트의 세계가 아주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불확정성 원리로 대표되는 1920년대의 현대물리학이 막 태동하던 시기의 미술 사조의 경향은 지식인들이 자주 모여서 수다를 나누던 살롱에서 과학자와 예술가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수긍된다. 하필이면 그 때였을까를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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