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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로/오름은 내림을 위함

2008년도 일출산행(비음산->용지봉->시루봉)

by seetop 2008. 1. 4.

00:10 용추계곡

버스가 용추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벌써 해는 2008년으로 바뀌었다. 용추계곡 주변은 온통 공사장으로 변해있다. 경전철이 진영에서 넘어오는 구간이라고 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공사가 못마땅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공사로 인해서 산이 흉측하게 변하거나, 기존의 등산로가 새로운 길로 인위적으로 바뀌어서 보기도 싫을 뿐만 아니라 가끔은 돌아가는 불편함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사방은 컴컴하고, 등산로 입구까지는 공사로 인해서 길이 울퉁불퉁하다. 랜턴이 기대한 것 보다 불빛이 약하다. 다음 번 등산할 때에는 건전지를 새것으로 교체해야겠다.

 

혹시 했지만, 역시였다. 들머리에서 조금 들어가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공사로 인하여 기존의 등산로는 막혀있고, 우회로가 인위적으로 개설되어 있다. 못마땅하지만 내가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서 개선될 게 아니라서 그냥 군소리 없이 우회로로 접어든다. 길은 원래 그랬는지 모르지만 뾰족한 잔돌이 발부리에 계속 걸린다. 그나마 날씨가 춥지 않은 게 다행이다. 앞서가는 사람들의 랜턴 불빛이 마치 여름날의 반딧불이 마냥 멀리서 깜박거린다.

 

몇 개의 작은 고개를 돌아 넘어서니 익숙한 지형이 달빛아래로 모습을 드러낸다. 비음산 가는 길이다. 오늘은 반달인데도 불구하고 달빛이 랜턴보다 밝게 느껴진다.

 

01:10 비음산

비음산을 오르는 길은 꽤 긴 오르막인데, 나무계단 구간도 여럿 있다. 비음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창원의 야경은 아름답다. 어쩌면 한 밤중에 만나는 익숙한 전경이어서 더욱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02:05 대암산

자주 다녀서 제법 익숙할 만도 한데, 밤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힘들다. 험한 독수리 바위도 알게 모르게 지나쳐버린 것 같고……. 대암산 정상을 지나 용지봉으로 방향을 튼다. (용지봉 2.7km)

 

여기서부터는 처음 가는 길이다. 그저 앞서가는 사람들의 랜턴 불빛을 보고 따라가야 한다. 멀리 용지봉으로 가는 길목에 랜턴 불빛이 깜박이며 희미한 줄을 형성한다. 길은 거의 외길이다. 용지봉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가까워 오니 어느 산에고 있을 법한 돌탑무지가 나타난다. 돌탑들이 있는 곳은 옛날부터 사람들이 많이 다녔음을 암시한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가다가 돌탑들이 나타나면 돌 한두 개는 더 얹어놓고 가기도 한다.

 

02:20 돌탑무지를 지나자 마자 벤치가 설치되어있다.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걸었기에 잠시 쉬면서 간식으로 가져온 소시지를 먹는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쳐간다. 대략 한 20여명은 되는 것 같다. 3분의 휴식 후에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용지봉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용지봉이 아니었다. 바람이 매우 거칠게 불어오는 거기에는 용지봉으로 가는 방향표시만 있었다. 방향표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오른쪽 방향에 거대하게 검은 산이 나타난다. 거기에도 랜턴불빛이 희미하게 지렁이 기어가듯이 가물거린다.

 

길이 낯설어서 그런지 랜턴 빛이 어두워서 그런지, 길을 잘 알 수 없다. 가끔씩 서서 길을 확인하기 위해서 어두운 산속을 두리번거린다.

 

03:15 용지봉

용지봉 정상에는 바람이 더욱더 거칠다. 짓다 만 천막 같은 곳에 있는 안내원이 1시간만 더 가면 된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시루봉까지 1시간이면 된다구? 한참 많이 남았을텐데…….

 

얼마 후에 갈림길 표지판이 있는 것에서 후배가 서성이며 어디로 가야 되느냐 묻는다. 표지판에는 장유폭포 방향과 불모산 방향이 표시되어 있다. 장유폭포로 가면 우리 집이 있는 장유로 내려가는 길이므로 불모산 방향이 맞다 알려주고는 앞서 걸음을 재촉한다.

 

불모산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매우 급하다. 게다가 밝은 달 빛에 비친 나무들의 그림자가 마치 호랑이 등 무늬처럼 숲에 드리워져서 길을 알아보기가 더 힘들다.

 

조금 후에는 아까 용지봉 오를 때 보았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넓은 돌탑무지가 나타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탑을 쌓았을까? 나중에 낮에 이곳을 지나게 되면 사진이라고 한 장 찍어 두고 싶다.

 

03:50 상점고개

이윽고 지도에서 보던 임도가 나타나고, 잠시 후 안전요원이 명단을 확인한다. 상점고개에는 여러 대의 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바람도 거의 없다. 잠시 배낭을 풀어 간식을 섭취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또 한 시간만 가면 된단다. 이제 알겠다. 안내원들이 말하는 한 시간이란 또 다른 안내원들이 기다리고 있을 포스틀 말하는 것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임도를 따라 불모산 송신소까지 가면 된다. 길은 매우 잘 정비되어 있고, 달 빛은 밝아서 랜턴 없이 걸어도 불편함이 없다. 멀리 앞서가던 사람들의 랜턴 불빛이 어느새 사라지고 이 세상의 밤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 같은 고요가 느껴진다.

 

왼쪽으로는 김해인지 진영인지 화려한 불빛이 흔들리는 도시가 보인다. 저 멀리는 부산인 것 같다. 별빛만 반짝이는 게 아니라 도시의 가로등도 멀리서 보면 반짝인다는 걸 새삼 알게 된다.

 

산의 높이가 높아질수록 바람이 더 세진다. 겉옷의 모자를 꺼내 머리를 감싸 덮는다. 여전히 달빛은 밝다. 뒤를 돌아보니 용지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랜턴불빛이 길게 늘어서 있다.

 

04:35

무슨 착각을 했을까? 길은 오른쪽으로 송신소 방향, 가던 방향으로는 군사지역 표지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송신소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게 군사지역 표지판이 있는 길로 접어든다. 왜냐하면 그냥 그게 맞을 것 같았다.

 

한참을 가도 랜턴 불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도 뒤로도 아무도 없다. 가끔, 아주 가끔 나를 비켜가는 차들만 한두 대 있을 뿐이다. 이 시간에 무슨 차들이 이렇게 험한 곳을 다 다닐까?

 

한참을 가다가 마주친 곳은 군부대 입구였다. 바리케이트가 있고, 지뢰매설지역 표지판이 있다. 이 길이 아닌가 보네 하며 뒤돌아서 다시 한참을 나오다가 운동 한편에 막 주차하는 차량을 발견하고는 쫓아가서 물어본다. 차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따뜻한 음료수를 나누어 마시고 있었다. 길을 잘못 왔단다.

 

05:20

길을 다시 되돌아 가니 아까 그 갈림길에 랜턴불빛이 줄지어 오른쪽으로 꽈리를 틀고 있다. 무슨 생각으로 나를 따르는 사람도 없고, 앞서가는 사람도 없는 곳으로 무작정 가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산에서 길을 잃은 게 처음이 아니다. 내가 길을 잘 찾을 수 있다는 오만함이 빚어낸 사고다. 산에서는 겸손해야 하는데……. 그런데, 길을 잃은 때는 거의 대개 임도와 같이 큰 길에서 길을 잃었다. 그런 걸 보면 자만과 방심이 역할을 함께 한 것 같다.

 

길은 송신소 입구까지 이어진다. 송신소 입구에서 임도는 끝나고, 말 그대로 험한 길로 접어든다. 길을 안내하는 안내원은 1시간만 더 가면 된다고 알려준다. 그래서 멀리 보이는 저 큰 산이겠거니 하며 길을 재촉한다.

 

헉헉거리며 오른 봉우리는 시루봉이 아니다. 저 멀리 봉우리 2개 너머에 시루봉의 형체가 확연하게 보인다. 적어도 두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길을 좁고, 나뭇가지는 딱 눈높이여서 진행하는 게 말 그대로 힘들다.

 

06:48 시루봉

안내원에게 도착을 알리고 나서 해 뜨기 전까지 앉아 쉴 곳을 찾는다. 정상이라서 그런지 바람아 가장 세게 불어오는 것 같다. 동요들에게는 해뜨기 직전에 바람이 센 이유는 해가 뜨면서 공기를 데우게 되는데, 그 때 대기의 온도차이로 인해서 바람이 세다고 아는 체를 했더니 곧이 믿는 눈치다.

 

자리를 잡고 가져온 발열도시락을 준비한다. 옆에 앉은 사람도 발열도시락을 준비하는데, 지형이다. 내 것은 도시락형. 봉지형은 내가 추천했었는데, 총무가 물을 따로 부어야 하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해서 도시락형으로 준비했다. 오늘 여기서 도시락형과 봉지형의 차이를 알게 된다. 봉지형을 준비해온 그 사람은 결국 먹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봉지에 물을 부어야 하는데, 가져온 물이 죄다 얼어버렸기 때문이다. 도시락형은 물 일체형으로 되어 있어서 따로 물을 부을 필요가 없다. 단지 날씨 탓으로 도시락 안에 든 물이 얼어서 조금만 더 보충해주면 되었다. 추운 산에서 먹는 따뜻한 도시락이란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알 수 있다.

 

그럭저럭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고 나니 아직도 해 뜨기까지는 10여분이 남았고, 바람은 더욱 더 세차게 불어온다. 마치 일출을 암시하듯이.

 

07:35 일출

동쪽바다 수평선에 얹혀 있는 짙은 구름 사이로 황금빛 해가 고개를 내민다. 지리산에서 보았던 것 보다 훨씬 더 크고 더 진한 황금빛의 태양은 말 그대로 이글거리며 구름위로 올라서서 온 사방을 비춘다.

 

같이 온 동료는 그간의 고생을 아랑곳 하지 않고 떠오르는 해를 사진기에 담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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